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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行.

天地開闢, 忠

metta-miya 2021. 5. 29. 21:59

삶은 재미없었고 그래서 지루했고,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늘 짜증이 났고 슬펐다.
어릴 때부터 ‘깨어나기’ 전(스승 예수께서 'Metanoia'라고 하셨던-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아들었다.)까지는.

약골로 태어난 것 같고(아들 낳으려고 보약도 많이 드셨다던 우리 엄니 말이 거짓인가?ㅎ~),
감정이 무겁고 복잡하니 자주 체했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종기가 났다. 하다하다 눈 다래끼까지 번갈아 났다.
사흘이 멀다하고 났던 종기와 다래끼는 중학생 때 어느 할아버지께 침 맞고 멈췄다.
환절기가 되면 감기를 너머 독감까지 앓았고 교사가 되어서는 만성 비염과 축농증으로 응급실까지 갔다.
2006년 봄, 동료가 소개해준 한의원에 가서 코에 침 맞고 나을 때까지, 1년에 6개월은 병원 약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비염 관련 완치는 한의원 침 + 그 후의 신비로운 경험도 있지만. 이 경험은 다음 기회에~).
 
어릴 때부터 참 힘들었다. 삶이 너무 힘들었다.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나의 선택은, 싸움과 외면이었다.
마음의 복작거림 속에서 용쓰며 살았고(싸움),
모른 척(외면)하면 괜찮다고 믿었다.
그러나 싸움과 외면의 공통점은 둘 다 '저항'이라는 것.
'저항하면 지속된다'는 에너지 법칙을 그때는 몰랐다.
그러나 그것을 그때 알았다 해도 달라졌을까?
알았던들 내가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내가 만든 자의식에 스스로 꽁꽁 붙들려 가슴은 굳게 닫혀있었는데?
 
삶에서 내가 만난 고통은
‘제대로’ 살아보라는 우주의 초대였음을, 그때는 몰랐다.
깨어나고 제대로 살아갈 기회, ‘시절 인연’을 알아보지 못했던 그때.
매번 한 움큼의 약(이비인후과)과 게보린 그리고 둘째를 낳고 배운 술, 혼술로 견뎠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조기 위암 진단과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방황.
그때 알았다. 싸움도 도망도 소용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기도 밖에는.
발길을 끊었던 성당에 갔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신께 기도했다.
-당신께서 알아서 해주십시오.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완전히 신께 조복했다. 2006년 8월 말이었다.
 
처음으로 찬찬히 나를, 내 삶을 돌아봤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나를 학대하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며 살고 있었구나...
내게 너무 미안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미안함이 너무 컸다.
내게 가장 많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음도 계속 들여다봤다.
내 몸과 어린 아들의 아픔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게 온 모든 경험을 마주 보며 두려웠지만,
더 이상 도망 가지 않았다.
더 이상 용쓰며 살지도 않았다.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께서 나타난다고’ 현자들은 말씀하신다.
 
틈만 나면 읽었던 책에서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였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유달리 좋아 했지만, 미친듯이 읽었다. 책에서 힘을 얻었다.
운전하다 들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광고 한 소절, 유행가 노랫말 가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두가 나를 일깨웠준 스승이었다.
내 안의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짜증과 원망의 자리에 감사함이 자리잡았다. 위암 수술 후 투병 중이긴 했지만 예전에 떠나지 않았던 잔병들이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경험하는 삶,
바로 두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현장이 내게는 공부방(法堂)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이전에도 처처에 스승(내가 유독 어렵게 느껴지고 대하기 힘들고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땐 내 마음이 ‘완고하여’ 스승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담마(Dhamma 法)를 설하셨어도, 눈 감고 귀 닫고 있는 나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 마음이 열리고 의식이 전환되니(메타노이아)
삶에 기쁨과 활기가 오히려 넘쳤다.
나의 첫 번째 ‘Metanoia’이며 ‘天地開闢’이었다.
 
의식의 전환과 修行으로의 삶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나의 가장 큰 스승이었던 아들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
멋진 청춘으로 성장했고,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은 억지로 하기보다 자연의 흐름을 좇는 마음을 내고 사니, 평화로웠다.
갈등의 상황에서는 마음 챙김을 하며,
두려움이냐 사랑(평화)이냐를 선택하는 알아차림은
나에게 평온을 주었다.
 모든 것은 나의 문제였다.

2011년 새해부터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역사교사에서 진로교사 전과(轉科)를 위해 겨울방학 내내 대구대학교에서 연수를 받을 때였다.
걸을 때 발가락과 발바닥이 연결되는 부분이 아픈 것을 시작으로, 통증이 이곳저곳으로 옮겨갔다. 주로 손목과 손가락, 어깨가 아팠다. 발바닥이 아프고 시려(여름에도) 온열기로 내내 찜질을 해야만 했다.
사혈과 부항, 그리고 온찜질을 하면 낫긴 했지만, 이내 다시 통증이 시작되어 심할 때는 숟가락도 들지 못할 정도로 손이 아파, 한 손으로만 운전과 집안일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가능하면 병원 가지 않고 낫고 싶었다.
하면 될 것도 같았다. 비염을 고쳤고, 감기를 하지 않듯, 통증도 그렇게 나을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자연요법에 대한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있었고,
약의 성분에 있는 독에 대한 생각도 선뜻 병원을 찾지 않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장두석 선생님의 책을 만나며 단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즈음 산야초 스승을 만나 효소단식도 했다.
그후에도 5일 정도의 단식과 짧은 1일 단식 몇 회기를 했다. 가뿐은 했지만 특별히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머리로 단식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것 정도?
요즘도 속이 불편하면 물과 소금만 먹고 굶는다.
두끼만 굶어도 속은 편안해지고 두통도 말끔해진다.

그러다가 벌침에 대한 공부를 하며 봉침을 맞기 시작했다. 벌의 침을 빼 온몸에 맞았는데, 아픈 손과 발에 봉침까지 맞으니...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못하리라.    
침을 놔주셨던 원장님도 당신의 70평생에 봉침을 이렇게 맞고 견디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즈음 시작했던 명상 덕분에 통증을 참을 수 있었지만, 7개월 정도 맞고 더 이상 맞지 못했다(다른 사정이 생김).
 
왕복 7시간이 걸리는 속초에 있는 유명하다는 한의원에 가서 장침을 맞고 한약을 먹고 오색 약수터에 몸을 담궈봤지만, 모두 신통치 않았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미루었던 병원에 갔다. 도시를 벗어나 봉화 산골 학교로 이동을 하니 겁이 났다. 일상을 영유할 수 없을 이 통증을 어떡하나..

이미 서울대병원에서 류마티스라는 진단을 받은 상태(2015. 8.)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명의로 꼽히는 선생님 중 한 분이 계신 대구 가톨릭병원을 찾았다.
2017년 2월이었다.

어떻게 이런 상태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냐고 놀라며 그제야 병원을 찾은 나를 크게 야단 치셨다. 일상 생활하기 불가능했을텐데 어떻게 참았냐면서, 나의 미련함을 혼내셨다.
약을 먹고 조절하면 괜찮아지고 삶의 질도 달라질테니
꼭 당신 말을 믿고 따르라고 하셨다.
공부하느라 떨어져 살았던 아이들도 엄마의 고통이 오느 정도인지는 몰랐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도 아픈 건 알지만 그저 조금 불편할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표시내거나 말하지 않았으니.
오직 혼자만의 몫이라 생각하며 견뎠다.
가끔씩 만나는 언니들도 아픈 건 알지만 심한 정도까지는 몰랐는데, 의사선생님은 내 상태와 통증의 정도를 알아주신다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나를 혼내셨지만 그 안에 담긴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류마티스도 암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한다.
암은 수술 후 15년이 지났으니 완치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1년에 1번씩 정기검진을 하며 추후 상황을 관찰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암에는 완치보다는 관해라는 말이 더 맞다.
지금은 증상이 완화되었지만 다른 부분에서 취약함이 나타날 수 있는 염려 때문이리라.
나의 류마티즘 발병은 아직 내 몸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징표라고도 할 수 있다. 근원적인 부분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항상 존재할 것이다.
 
병원에서 내게 처방해주신 약은 2가지다.
하나는 진통, 소염 등 작용을 하는 5종류의 약과 다른 하나의 약은 항암제로 사용하는 것이다. 항암제를 류마티스 치료제로 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약을 류마티스 치료에 같이 썼다. 1주일에 6알까지 복용할 수 있었다. 처음 투약할 때(2017. 3.)는 진통, 소염제를 매일 먹었지만, 차츰 좋아지면서 3일에 한번 먹다가 1주일에 1번으로 줄였고, 2년 전부터는 먹지 않는다.
지금은 항암제인 메토트렉세이트만 열흘에 5알 먹는다. 주치의께서는 1주일에 6알씩 꼬박 챙겨 먹으라고 하지만 내가 임의적으로 조절하고 있는데, 얼마 전 검사(5. 25)에서 수치가 안정적이라고 해서 당분간 그렇게 임의적 조절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수행을 할수록 몸에 대한 소중함과 근원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이 새록새록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미숙선생님의 동의보감 강의를 비롯해 몸과 관련한 강의들을 유투브에서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공부의 여정에서 몸을 좀 더 가까이 만나는 기회를 가진 것도 큰 선물이었다.

작년에 3번이나 만나 함께 공부했던 ‘춤의 학교 최보결’선생님과의 만남에 이어, 지난 주말에는 모미나선생님과 함께 ‘몸으로 나누는 NVC(비폭력 대화)’를 했다. 내 몸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연결된 지점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우주는 계속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몸을 돌아보라고, ‘제대로’ 돌보라고 초대를 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순간, 브리스에게 연락을 했다. 마음의 씨앗에서 주관한 '함께 이끌기'를 함께한 신뢰 서클 동료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선택한 결정이었다.
 
이번의 몸 비움은 다시 ‘Metanoia’와 ‘天地開闢’을 할 수 있는 천우신조의 기회임을 안다.
‘天地開闢, 忠’

몸 비움을 시작하기 전, 내가 세운 목표이자 방향이다.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열린 온전함으로의 회귀가 목표다. 
그 목표를 위한 일상의 삶을 마음의 중심을 잡고(忠=中+心) 충실히, 정성껏 살기.
브리스가 단식의 목표 또는 기도문이 될 제목을 생각하라고 했을 때, 이미 내게 저절로 찾아와 단박에 품은 목표를 말했다. 함께 기도해준다는 브리스의 말에 뭉클했다. 대충대충, 설렁설렁이 아닌 ‘정성껏’하고 싶은 마음은 忠으로 방점을 찍게했고 브리스에게 배경을 설명하는데, 가슴이 벅찼다.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시작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니, 바로 그것이 그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기적수업은 말한다.
의심은 여러 바람이 대립하는 결과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하라. 그러면 의심이 생길 리 없다고도 말한다.

‘天地開闢, 忠’. 내가 이번에 시작한 몸 비움의 목적이며 목표이자 가야할 방향이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다.
걱정이 많다. 직장에서의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공부도 많다. 무리하지 않게 욕심내지 않게 하기.
배고픔을 견디는 것도 걱정이지만, 염색하면 안 된다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염려가 가장 크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가 공부의 여정에서 품고 가는 것 중 하나인데, 여전히 나는 타인의 시선에 매여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겠습니다'.
하루를 여는 기도문의 하나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의 사랑에 한계를 지닌 나 자신 또한 내가 품을 수밖에 없음도 안다.
앎을 삶으로 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나를, 이제는 비난하지 않는다. 자책도 하지 않는다.
부족한 나를 합리화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순한~ 마음으로 하자. 
그러다 보면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이제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善을 이룬다는 말씀의 힘도 안다.
 
몸 비움을 시작하고 상담한 내게 상세한 설명과 힘을 주는 브리스의 함께함은 내게 가장 큰 힘이고 축복이다. 
시작 전, 오혜숙선생님의 책을 읽고 마음을 다졌다.
밴드에 있는 다양한 정보와 많은 분들의 체험담도 큰 도움이 되었다. 고마움 천지다.
 
2021. 05. 28. 밤부터 시작한 몸 비움.
2021. 05. 29. 본단식 시작.
본단식 10일, 회복식 10일, 조절식 30일, 총 50일 예정이지만,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른다.
처음 생각대로 총 50일 단식으로 갈지, 못 갈지 더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신만 아실 뿐~
그러나 목표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제대로의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내 곁 함께하는 고마운 분 덕분에,
잘 하리라 믿는다.

오직 나는,
고요한 마음으로
한 걸음씩, 한 순간 한 순간 그리고 오늘 하루만
‘제대로, 정성껏’ 하자고 다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겠습니다.
내게 오는 삶의 모든 경험을 환대하겠습니다.
진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이번 生 우리는 '이미' 성공했음에 감사드리며,
天地開闢, 忠!

 
Gracias A La Vida!!! 연금술사 Joy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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