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좌선은 참으로 편안했고 집중도 잘 되었다.
담마삐야님이 보내주신 귀한 법보시 책인 <자애 수행>을 읽기 시작했고, 1000일 정진(寫經) 중, 900일 회향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대학동창 모임을
'Dhammavana(담마의 숲, 우리집)'에서 가졌다.
보물(아들의 애칭) 결혼에 와 준 친구들을 2월에 봤으니 봄과 여름 지나 가을 초입에 오랜 지기인 벗들을 만났다. 날이 너무 좋아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안양, 경주, 선산 그리고 대구에서 달려온 벗들.
간단히 과일 먹으며 안부 묻고, 조금이라도 가을 느끼고 싶어 서둘러 나섰다.
가까운 곳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해인사 원당암으로 가는 길목, 정견대 고시원 부근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풍광에 친구들은 감탄했다.
해인사까지야 다 와 봤지만, 원당암은 생각도 못했던 벗들은, 미소굴에 올라 다시 감탄했다.
한때 나의 카카오톡의 배경 화면에 나온 사진과 경구, '공부하다 죽어라'의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이제야 풀렸다는 벗들은 그곳을 퍽 좋아하는 듯했다.
나는 미소굴 혜암종정의 영정에 삼배를 올리며 감사를 드렸다.
붓다의 위신력으로
Dhamma(法, 붓다 가르침)의 위신력으로
Saṅgha(승가)의 위신력으로
제가 조금이라도 탐, 진, 치를 소멸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청정범행을 닦고 있습니다.
혜암스님의 유훈을 지키고자 살아가는 저를, 스님께서 외호하여 주세요.
해인사 부처님께도 삼배 드리고 장경각판 기운 받으며 900일 회향을 했다.
편안하고 감사했고 고요했다.
함께한 벗들, 오고가며 스치는 인연들에게 마음 속으로 'sukhi hotu(행복하기를)~!' 축원도 자주 드렸다.
정원식당에서 맛난 공양을 하고, 달의 정원에서 커피도 마시고, 가볍고 즐겁고 기쁜 시간을 보내고 벗들은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나도 내 자리에 安着.
그리고 오늘, 901일 회향일.
오늘부터 위빳사나 수행 전에 '자애 수행(mettā bhāvanā )'을 10분 정도 먼저 하기로 했다.
자애 수행 후 배의 부품과 꺼짐을 계속 관찰하는데 목이 간질거렸다. 계속 관찰하며 주시하자 그 가려움이 가라앉았다.
수행 때 통증은 지켜보니 사라졌지만 목의 간질거림은 관찰하다가 참기 어려워서 기침으로 연결되었는데, 오늘은 신기하게 가라앉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잠시 뒤부터 오른쪽 무릎이 너무 아팠다. 계속 관찰하고 이름 붙여도 그 정도는 점점 심해 갔다.
너무 아프니 호흡 관찰도 어려웠다.
통증에 오래 머물러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고 더 심해졌다. 생각 안에서는
'다리 자세 바꾸고 싶어하는 마음'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을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중간에 눈 뜨지 않기, 자세 바꾸지 않기)도 있음을 알았다.
오고 가는 마음들을 계속 지켜 보는 데, 다른 생각이 일었다.
'내가 生의 마지막 숨을 쉴 때의 고통은 어쩌면 상상할 수 없을만큼 아플지도 모른다.
지금 이 정도의 고통에서도 수행 주제 보다 이 몸이라고하는 물질에 끄달려가고 있는데,
내가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숨을 쉴 때 과연 호흡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 so attā'ti.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이 생각이 들자 신기하게도 다시 호흡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번 생의 마지막 숨을 관찰할 때,
부디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하기'를 念했다.
다시 호흡, 배의 부품-꺼짐을 관찰하는데 좌선 종료 알람이 울렸고,
그 소리를 듣는데 울음이 터졌다.
너무 고마웠다.
고통을 견디며 관찰한 아스미가 고마웠다.
견딜 수 있도록 부촉해주신 3寶께 감사했다.
좀 울었는데, 울다가 나를 봤다.
vedanā(受, 느낌)를 관찰하니 곧 고요해져서
3배를 올리고 경행하며 마무리 했다.
vedanā anattā.
보면, 사라졌다.
오늘 좌선 시간 때의 '이것을',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기억할 수 있기'를! 그래서 마지막 호흡을 부처님 가르침대로 잘 섭수할 수 있기를!
sādhu sādhu sādhu!!!
오후에는 존경하는 두 스님을 모시고 거창 가조에 있는 천년 고찰 古見寺로 순례를 다녀왔다.
지난 여름부터 함께했던 성지 순례의 일환이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릴 바나나 3손, 귤 5kg, 포도 3kg을 손에 들고 산길을 걸어서.
중간쯤 갔을 때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지만 신심 가득한 스님들과 고요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지난 여름 경주 남산 칠불암 오를 때에도 8kg 수박, 복숭아 5kg, 귤 3kg을 각각 하나씩 손에 들고 가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는데, 보시금 올리는 것 이상으로 좋아서 이번에도 스님들과 함께 했다.
(항상 나는 제일 가벼운 공양물을 들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삼배 드리고 그리고 스님의 제안으로 한참을 앉았다.
그 순간의 감사함을 어찌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비 오는 날 깊은 산사 법당에 고요히 앉은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하니 꿈같이 느껴진다.
대웅전 뒤, 바위에 앉아 계신 부처님을 뵙고 내려오면서 두 스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너무나 좋은 곳을 안내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2022년 4월 23일 토요일, 학장스님과 함께 다녀간 고견사에 이어 오늘 두 번째로 고견사 부처님을 뵈었다.
그때 보다는 아스미가 조금 더 청정해진 것 같고 탐진치가 쪼매라도 빠진 것 같아 참 다행이다.
돌아오는 길에 스님들께 말씀드렸다.
"이번 생에 제가 테라와다 불교를 만나 부처님의 원음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 이 행운과 복덕의 크기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제대로 공부하고 수행 하여 부처님과 담마, 상가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남은 삶을 진짜 잘 살고 싶습니다, 스님~"
900일 회향일과 901일 회향일.
글로 쓰니 길어졌지만, 성스럽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붓땅 사라낭 가차미
담망 사라낭 가차미
상강 사라낭 가차미
뚜띠얌삐 붓땅 사라낭 가차미
뚜띠얌삐 담망 사라낭 가차미
뚜띠얌삐 상강 사라낭 가차미
따띠얌삐 붓땅 사라낭 가차미
따띠얌삐 담망 사라낭 가차미
따띠얌삐 상강 사라낭 가차미
sādhu sādhu sād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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